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쿤 (문단 편집) ==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 == <과학 혁명의 구조> 출판 이후 쿤은 [[프린스턴 대학교]], [[MIT]] 등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후기로 갈수록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는 등 과학철학적 주제에 관해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1978) 등 과학사학자로서의 활동도 쉬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내내 쿤은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과 묶여 '합리주의적 과학관'에 반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쿤은 자신이 ‘비합리주의’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으며 상기한 사회 구성주의와 과학지식사회학 옹호자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쿤이 내놓은 여러 개념들은 계속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과학사학자인 피터 갤리슨은 [[크리올어]]의 사례를 들어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비판했다. 분명 사용하는 단어와 제반 문화가 다름에도 언어가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소통가능하듯이 과학의 패러다임도 일종의 피진어 형성을 통해 공약 불가능성을 극복한다고 보았다. 특히 과학에서는 이론이 바뀌더라도 몇몇 사실([[끓는점]] 등)이나 실험방법,실험기구 등이 따라 바뀌진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과학자를 이론/실험/기구 연구자로 나누고 실험, 기구 연구자들이 피진어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여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